

《井》을 위한 작가노트
2025.05.01.
글: 정아사란
전시 공간 마당에 있는 우물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물 안에 물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건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어린 시절 샘물을 파내고 싶어 하루 종일 맨땅을 후벼판 적이 있었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짓을 했을 것이다. 마른 땅에서 샘물이 퐁퐁 솟아나는 황홀한 이미지! 도시에서 나고 자라 우물에서 물을 길어본 적조차 없던 나는 그런 이미지를 대체 어디에서 보았던가? 나는 실시간으로 모든 것에 연결된 듯하다. 빛나는 화면으로부터 나는 내가 알고 싶은 정보, 때로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던 수많은 정보를 마주한다. 그러나 정작 내가 세계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연결은 단절된 지 오래다. 나는 마른 우물과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
나의 기존 작업은 기술‧디지털 이미지‧정보처럼 비물질적인 흐름이 현실과 나의 지각을 어떻게 재편하는지 그 관계성을 들여다보았다. 그러한 힘은 너무나 거대해, 모든 것이 그 메커니즘에 예속되어 가는 듯하다. 최첨단 기술과 거대한 자본은 개인이 접근하기에는 극히 어렵거나, 불가능한 영역을 형성한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무게와 질감을 지닌 물질의 지반 위에 서 있다. 그 물질성을 보여주는 매개가 ‘물’이다. 물은 가장 가느다란 틈새도 스며들어 연결된다. 한순간을 고정하고 시간을 담아두기도 한다. 동시에 거대한 질량의 덩어리로서 무게를 가진다. 흐름과 고정, 무경계와 중력—복합적인 특성을 품은 물 안에서, 나는 비물질과 물질이 서로를 흔드는 접점을 포착한다.
최근 알래스카에 다녀왔다. 당초 여행의 목적은 이미지로만 접하던 빙하의 실제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작 나를 사로잡은 것은 800km의 도로 옆으로 계속 이어진 송유관-파이프라인이었다. 연결을 위한 거대하고 압도적인 지향, 그것을 관리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많은 사람들. ‘연결성’의 물질적 실체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관심을 전시장 ‘공간일리’의 장소성과 더욱 긴밀히 결합했다. 특히 마당 부분에 있는 공간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지붕에 걸쳐져 마당을 가로지르는 〈무게 모으기〉, 우물에 의지하여 설치된 〈잇기〉, 우연히 쪼개진 작은 바위 사이에 놓인 〈끼우기〉는 오직 이 자리에서만 완성된다.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시간의 한순간, 지금 여기.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의 모델 속에 종속시키려는 거대한 의지 속에서도 여전히 그렇게는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기꺼이 스크린 밖에 서 있어야 하며, 때로는 고통스러운 무게를 져야만 한다.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