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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전시 서문

2025.05.19.

글: 박상은

이번 정아사란 개인전 《井》의 제목인 ‘井’은 공간:일리 마당에 자리한 우물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보를 연결하는 해시태그와 닮은꼴이기도 하다.

  

작가는 디지털, 이미지, 정보와 같은 비물질을 주제로 연구해 왔다. 어디에나 편재하는 듯하며 가늠할 수 없는 막대한 유동성, 그리고 끝없는 연결처럼 여겨지는 비물질의 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감각하고 있을까. 비물질의 특성이나 특징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해 오던 작가는 비물질을 물리적인 실체로서 목도하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필드트립을 떠난다. 머나먼 알래스카에서 예상치 못한 여정 끝에 본 것은 송유관이다. 고지서로 그 실체와 용량을 얄팍하게 가늠해 보던 에너지도 다양한 경로를 거쳤겠지만, 결국 접근이 제한된 영토 위에 설치된 거대한 물질의 산물이다. 그곳에서 작가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여전히 무게와 질감을 지닌 물질의 지반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을 확인한다.

  

정아사란 작가는 물질성과 연결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매체로서 ‘물’에 주목해 왔다. 물은 도처에 있다. 일정 양을 가질 수는 있지만 개수로 나눌 수 없고, 온도에 따라 그 물성을 달리한다. 어디선가 모이고, 흐르고, 흩어진다. 이러한 물의 특성은 디지털, 이미지, 정보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비물질의 보편성, 유동성, 연결성과 같은 특성과 중첩된다. 작가에게 물은 물질인 동시에 비물질적인 무엇이다.

  

공간:일리의 마당에는 우물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제 기능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우물의 형태를 띠며, 안 깊은 곳에 물을 간직하고 있다. 작가는 계절이 바뀌는 시간 동안 전시장을 여러 번 찾아 이곳에서 감각할 수 있는 연결과 흐름을 면밀히 탐사한다. 물이라는 물질을 따르던 그의 시선 속에서 우물은 다시 솟고, 모이고, 흐른다. 전시장의 마당 공간을 활용한 설치작업은 물을 매개로 하여 시간, 그리고 시간에 따른 빛과 같은 비물질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한다. 작업물의 말단은 우물 속, 지붕 위, 하늘을 향한다. 이때 설치작업의 경계란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시를 통해 관객은 세계를 이루는 물질과 비물질을 아울러 감각하고 사유할 기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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